예술가는 왜 거듭 다짐하는가

예술가는 왜 거듭 다짐하는가


모든 예술가는 천재를 꿈꾼다. 어린 문인이라면 도스또예프스끼가 벨린스끼의 극찬 속에서 데뷔한 것을 떠올릴 것이다 어린 예술가는 언제나 패기만만하고, 언젠가 자신이 브루통처럼 될 것이라 생각한다.

분명 우린 어린 시절부터 비범했기 때문에 프로 예술의 무대에 진입했다. 우리가 내뱉은 어휘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우리의 접속어는 침묵이었다. 그 침묵은 시위. 재능을 공표하고자 하는 시위였다. 그것이 우리의 자아가 되었다. 우리의 자아는 현대 사회의 규범적 자아와는 달랐다. 우리의 부모는 언제나 역사 속에 있었다. 우린 천재들의 작품을 읽으며 꿈을 꿨다. 꿈속에서 우린 나보코프가 될 것이고 멜빌이 될 것이고 헤밍웨이가 될 것이다. 우린 때때로 네 개의 손과 여덟 개의 머리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라도 투르게네프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악몽이든, 길몽이든 그렇다. 그 감성적인 소설가는 아름답고 섬뜩한 작품을 남겼지만 어린 예술가들의 더 어린 시절의 꿈은 아니다.

밤이 깊었을 때, 낮이 없이 밤이 지속된 몇 날 며칠. 그럴 때면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혀끝에 응축된 단어들은 비범의 규칙을 일찌감치 깨달은 영악한 아이들의 놀이였을 수도 있다고. 그것은 그저 몇 가지의 법칙이었을 뿐이라고. 그것은 비범의 놀이, 천재에 대한 모방일 뿐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곧 소멸할 것이다. 소멸은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다. 내 몸을 갈기갈기 찢는 고통 속에서 소멸할 것이다. 아니 파멸할 것이다. 라는 공포에 휩싸인다.

나는 죽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클리쉐일 수도 있다. 예술과 죽음의 연쇄, 그 관용어구. 하지만 모든 클리쉐 내부에는 아주 뚜렷한 통찰이 있다. 실비아 플라스와 까미유 끌로델의 불행은 그들이 예술을 했기 때문에 형상화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과민한 감성을 가지고 태어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로 활로를 뚫는 순간부터 그들은 정해진 불행으로 나아가고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새로운 작품을 떠올리고 그것에 실망하는 과정이 반복된다는 것은 언제나 죽음의 공포에 다가서다가 구원받는 것과 같다. 프로메테우스는 생각할 것이다. 혹시 내일은 독수리가 오지 않을지도 몰라. 혹시 내일은 제우스가 용서할지도 몰라. 혹시 내일은 내가 은혜를 베푼 인간들이 나를 구하러 올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심장을 독수리에게 내줘야 했고, 매일 죽어갔다. 죽어 갔지만 죽지 않았다. 이게 예술의 세계다.

쉽게 말해 매일 자신의 파멸을 구체적으로 실감하는 곳. 자신을 이루고 있는 자아가 가짜일 수도 있다는 의심에 사로잡히는 곳. 그것은 내 삶의 에너지들이 무용하며, 내 의지 또한 허구 위에 세워졌다는 말이 된다. 매일 죽어 간다. 죽어 가지만 죽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독재자가 된다. 논리는 중요하지 않다. 절대적인 의지와 압도적인 힘이 필요할 뿐이다. 한 명의 예술가는 하나의 왕국의 지배자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한 명의 예술가는 탑에 갇힌 왕자다. 철가면을 쓴 왕자다. 그 작은 방, 햇빛이 들어오는 밀폐된 방만이 유일한 권력의 세계. 방에 들어온 쥐를 죽여 창밖으로 던지면서 한 명의 예술가, 혹은 왕자는 삶을 실감한다. 하지만 그곳은 방이다. 밀폐된 방이다. 높은 탑 위의 방이다. 그 실감은 곧 살아 있다는 절망으로 치환될 것이다.

절망 속에서 왕자 혹은 예술가는 꿈꾼다. 도스또예프스끼를, 나보꼬프를, 멜빌을. 천재가 된다면, 내가 천재가 된다면. 나는 삶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반복된다. 그날과 똑같은 날이 두텁게 쌓여 간다. 왕자 혹은 예술가는 매일 쥐를 창밖으로 버린다. 버리고 또 버린다. 버린 쥐가 탑 높이만큼 쌓였을 때, 왕자 혹은 예술가는 말한다. 어쩌면 내가 천재일 수도 있어.

물론 그런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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