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이미지

천재적 인간, 모차르트

 

머릿속에서 천재를 떠올려 보자, 어떠한 모습인가? 일단 헤어스타일은 단정하면 안 된다. 헤어젤을 발라 말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라니, 말도 안 된다. 천재라면 일단 자고 일어난 부스스한 머리여야 한다. 하지만 떡진 머리는 괜찮다. 말투는 극단적이어야 한다. 말이 많거나 아주 없거나. 겸손은? 개나 줘야 한다. 말이 아주 없는 천재조차도 자신에 대한 자랑은 피력해야 한다. 어마무시한 개인 능력으로 옆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쫑크줘야 한다. 이때의 자랑질은 당연하게도 의도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그냥 그러니까 하는 말인데, 대단한 것이어야 한다. 마치 모두가 지구는 네모지다고 생각했을 때 혼자서만 지구는 둥글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노력은? 평범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거리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만 있으면 악보든 그림이든 시든 줄줄이 써내려 간다. 마치 머릿속에서 방언 터지듯 끝도 없이 나온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손이 따라 갈 수 없어 마음이 바쁘다. 그렇게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것을 사람들은 마스터 피스라고 부른다. ? 당연히 관심 없다. 있으면 땡큐, 없으면 말고다. 돈은 어딘가에 처박아 두던가, 한 번에 다 쓰는 거다. 그렇게 늘 매사 극단을 오가면서 매일 같이 노동처럼 일을 하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물론, 비웃으려고 의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천재들의 말투는 늘 비꼬듯이 들리니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 이제 그만 천재를 떠올리는 것을 멈춰보자. 필자가 지금까지 언급한 천재의 모습과 얼마만큼이나 일치하는가? 아마도 거의 전부이지 않을까? 왜냐하면 필자나 독자나 직접적으로 천재를 만날 일은 거의 없는데다가 우리는 지금껏 만들어진 천재들의 이미지만을 복사해서 저장해 놓았기 때문이다.

 


영화 <아마데우스> 중에서 모차르트의 웃는 모습

 

백진현씨가 쓴 <만들어진 모차르트 신화>타고난 신동, 천재의 상징인 모차르트의 속내를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신동, 천재에 대한 진원지가 어디이며 언제부터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추적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천재라는 이미지를 비슷하게 갖고 있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듯이 천재 또한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그 천재라는 단어 또한 특출한 어떤 점을 가진 사람을 특별하게 부르는 것이 아닌 일반화해서 지칭하는 단어가 아닐까? 천재라는 말 자체는 평범한 사람들과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 모두 불편하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모차르트의 자필 악보>

 

천재를 떠올릴 때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이 바로 영감이다. ‘영감이 떠오르면 마치 귓속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것처럼 옮겨 적기만 하면 된다. 시험지를 받아 보았을 때 바로 누군가 답을 불러 주는 것처럼. 그 답을 쓰면 당연히 시험은 백점이다. 시험지를 받았을 때 낑낑 댄다면 그것이 천재일까? 누구나 다 시험지를 받으면 낑낑댄다. 하지만 천재가 낑낑댄다니. 천재는 10분 안에 답을 다 적고나서 확인하지 않고 엎드려 자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이미지일 뿐이다. 모차르트의 자필 악보를 보라. 그의 답안지(악보)는 오답을 지우고 수정을 한 흔적 투성이다. 여섯 살 때 피아노곡을 작곡하고 여덟 살 때 교향곡을 작곡한 천재의 이미지 때문에 십여 년 간의 트레이닝 과정과 평생을 거쳐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킨 노력은 가려지게 된다. 대신 방탕한 생활과 경박한 웃음만이 그 노력위에 덧칠되어 있다. 게다가 천재와 신동은 왜 유독 어린 시절에만 빛을 보게 되는지. 뮤지컬 <모차르트>에 등장하는 모차르트는 줄기차게 내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해 달라고 외친다. 어렸을 적 남다른 재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모차르트는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자신을 외면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은 그대로인데, 어린 천재인 모차르트는 사랑하면서 나이든 천재인 모차르트는 애물단지 취급이다. 그래서일까, 뮤지컬 속 모차르트는 줄기차게 어릴 때의 모습처럼 징징대는 꼴로 등장한다. 영화와 희곡, 소설, 그리고 뮤지컬까지 모차르트의 이미지는 늘 경박함이었다. 좋게 포장하면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함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픽션이다. 극의 재미를 위하여 만들어진 이미지다.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면 진짜 모차르트가 살리에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살리에리조차 만들어진 이미지 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천재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 놓기 때문이다. 천재는 노력과 상관없이 얻어 걸린 신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마데우스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었던 1%의 운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모차르트의 악보를 보라. 세상에 둘도 없는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모차르트의 악보는 상처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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