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라는 콘텐츠

모차르트라는 콘텐츠

 

모차르트가 탄생한 지 250년이 넘었다. 1756년에 태어나 1791년에 사망한 그는 짧은 생애 동안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남겼다. 그가 원했던 삶은 아마도 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신비한 힘을 가진 마술피리처럼, 아무리 사납고 사악한 것들도 음악으로 평온해 지는 그런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짧지만 강렬한 생애를 살아간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그도 죽고 나서 더욱 큰 명성을 얻었다. 물론 살아생전 그의 삶은 아주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발휘된 재능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으며 (어렸을 적 무리한 여행으로 류머티스 성 발진 바이러스가 침투했으며 서른이 넘어 발병함으로서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궁정에서 연주회를 가지고, 오페라를 성공시켰다. 하지만 그는 그의 재능만큼이나 성실했다. 새벽 2시까지 작곡을 했으며 새벽 4시에 다시 일어나 작곡을 시작한 워커홀릭이었다. 먹고 놀고 마시기만을 좋아했던, 경박한 웃음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조롱했던 모차르트의 이미지는 원래 그의 것이 아니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실제의 모차르트는 알지 못한다. 오로지 악보와 문서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실체. 그 안에서 무수하게 변주되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모차르트라는 인물 자체가 바로 콘텐츠라는 것을.

 


 

인류사의 대표적 천재 두 사람을 고르라면 많은 사람들이 모차르트아인슈타인을 꼽지 않을까? 그러한 이유는 그 두 사람이 유독 도드라진 천재여서가 아니다. 그 만큼 대중들에게 노출이 많이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모차르트는 대중이 좋아하는 천재의 이미지에 가장 부합한다. 어린 나이게 발휘된 천재성, 그것의 성공적인 장착, 그리고 요절까지. 그 사이에 벌어졌던 모차르트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보너스인 셈이다. 모차르트의 삶 자체의 드라마성 때문에 그는 일치감치 많은 작가들의 창작 소재가 되었다. 푸슈킨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국내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피터 셰퍼의 <아마데우스>는 유명하다. 현재의 모차르트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 아마 피터 셰퍼일 것이다. 물론 살리에리의 이미지 까지 말이다. 피터 세퍼의 <아마데우스>를 영화화한 것이 밀로스 포먼 감독의 <아마데우스>. 1985년 발표된 이 영화는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한 주요 부문에서 8개의 상을 휩쓸었다.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관광객들이라면 기념품으로 하나 씩 살만한 물건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쿠겔른이라고 불리는 초콜릿이다. ‘모차르트쿠겔른은 오스트리아 초콜릿의 일반명사로 불린다. 단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럼, 와인 등을 넣은 모차르트쿠겔른도 판매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모차르트 향수와 티셔츠 모자 등도 판매되고 모차르트 우유와 요구르트까지 있다. 이렇게 모차르트의 얼굴과 이름이 달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300개가 넘는다. 이 제품들의 수익은 매년 5백만 달러, 한화로 60억 원에 이른다. 게다가 모차르트의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관광객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입과 오페라, 콘서트 등이 산출하는 수익이 더해지면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모차르트는 살아 있을 때 보다 죽고 나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 수익은 위대한 유산이 되었지만 말이다.

 

2006년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서는 ‘2006년은 모차르트의 해라고 선포한 뒤 12개월 내내 그를 위한 생일상을 차리기 바빴다. 127일부터 비엔나에서는 '모차르트를 위한 파티'를 열었다. '모차르트 하우스 비엔나'는 오는 127일부터 모차르트가 살던 그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한편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영감을 얻은 '마술피리구역'을 새롭게 선보였다. 또 필름 아키브 오스트리아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비롯 모차르트와 관련된 모든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뮤지컬 극장으로 유명한 '씨어터 안 데어 빈'은 플라시도 도밍고와 줄리안 라클린 등을 기용해 <돈 지오바니> <코지 판 투테> <마술피리> 등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공연하였으며 30권 이상의 모차르트 관련 서적이 출간되었다. 어디 그 바람이 오스트리아에서만 불었겠는가? 세계 곳곳에서 모차르트 관련 콘텐츠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그야말로 모차르트 홍수였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편하게 쉬지 못하는 그의 삶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차르트는 여전히 대중들이 사랑하는 아이콘이다. 유니버설 클래식의 마틴 키엔즐의 말마따나 모차르트는 최고로 잘 팔리는 작곡가.” 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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