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마데우스> 속의 살리에리

영화<아마데우스> 속의 살리에리

 

질투는 천성이자 본능이다. 누구에게 배워서 질투를 시작하는 사람도 없고,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고 해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평생 질투 한 번 안 하는 인간이 있을까 싶지만, 질투는 참 인정받기 힘든 감정이자 욕망이다. 칠거지악이라 해서 질투만 해도 아녀자가 쫓겨나던 시절이 있는가 하면, 요즘도 질투 인정은 찌질이 인증이나 다를 바 없다

 

 

 

그에 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난 질투를 했었소.”

질투 커밍아웃의 주인공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진짜 주인공 살리에리’.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잘난 사람이었다. 유년시절부터 천재로 인정받았고, 베토벤·슈베르트·리스트의 스승이었다. 운까지 좋아 젊은 시절부터 성공 가도를 달렸고, 재능, 명성, 부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며칠을 고민해 만든 곡을 즉흥곡으로 눌러버린 전설의 레전드모차르트가 나타나며 살리에리는 안타까운 기도로 밤을 지새우는 찌질이로 전락하게 된다.

   

 

내가 음악적으로 찬미하는 걸 바라지도 않으면서 왜 그런 바람을 갖게 했을까? 욕망을 갖게 하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지.”

 

절망과 자괴감, 동경과 간절함, 거기에 원통함까지 담아 살리에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상대는 신의 은총 그 자체인 모차르트’. 기도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명백해진 순간, 살리에리는 위대한 궁정악장에서 모차르트 스토커가 되고 말았다. 부족할 것 없는 인생을 스스로 초라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질투가 문제였을까? 나보다 돈이 많아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보다 좋아해서, 몸매가 좋아서 등등 유치찬란한 이유로 질투에 빠지는 우리의 모습을 보라. 차라리 모차르트라는 찬란한 인물을 대상으로 한 살리에리의 질투는 고급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는 죽어가는 모차르트의 곡을 받아쓰며 화해 비슷한 것까지 하니 따지고 보면 둘의 관계는 해피엔딩이다. (비록 살리에리 자신이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고 가긴 했지만.)

어차피 인간이란 남을 비춰 비교하며 자신을 채워가는 존재다. 질투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하는 것 같은 숙명일 뿐이니 흠될 것도 없다. 그의 불행은 최선을 다해 질투할 만큼 하고, 모차르트의 비극을 끝까지 지켜보고도 결론을 얻지 못한 데 있었는지 모른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은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다. 그토록 염원하는 모차르트의 인생을 살리에리가 살 일은 없다는 거다. 하지만 그는 질투한 자신을 혐오하고,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끝까지 모차르트의 재능을 포기하지 못했다. 물론 그의 지독한 미련이 있어 영화도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세상 모든 평범한 이들이여. 너의 죄를 사하노라.”

그럼에도 모차르트는 죽는 순간까지 살리에리의 끓는 질투를 알지 못했다. 질투로 인한 파멸은 오롯이 살리에리의 몫이었다는 거다.

그렇듯 어차피 내 속만 아픈 게 질투라면, 다 알면서도 그 고삐를 잡을 수 없다면 살리에리를 기억해 두었다 죄책감이라도 지워보는 것이 좋겠다. 평범하지도 않았으면서 평범한 이들을 용서해 준 살리에리 옹의 말처럼 당신의 죄는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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