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두 마음, 사랑 그리고 질투

필자는 한번 생각했다. 사랑, 그것만 안 하면 평온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사랑이라는 성질은 사람을 행복하게도 만들지만, 사랑으로 인해 불행해진다는 것을 느끼게도 한다.

어린 시절, 내가 겪은 사랑은 힘들기도 했지만, 달콤함과 뜨거움이 컸다. 하지만, 사랑을 하면서 다른 부분으로 장님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내 오감은 오로지 사랑으로만 향했고 주어진 시간의 거의 모두를 사랑에 쏟곤 했다. 해야 할 다른 일들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물론, 자기발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성장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현재를 즐기자(Carpe diem)’ 를 되뇌는 자기최면을 반복했다. 사랑을 하면서 뜨겁기만 했던 시절, 꿈과 낭만만을 보았던 시절은 사랑이 깨지면서 절망으로 다가왔다. 원래 없었던 것이었는데, 그 감정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버렸을 때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스스로 컨트롤을 해보려고 해도 절제가 되지 않을 만큼이었으니 말이다. 그 때 처음으로 사랑은 위험한 것이라고 느꼈다.

 

 

 


그렇다면, 왜 사랑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을까? 가슴 속에 가득 채워졌던 사랑이 빠져나간 이후로, 자기파괴를 해나가는 스스로를 관찰하며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면 늘 연인이 걱정되고 나에게 쏟을 관심 중 절반 이상이 혹은, 90프로 이상이 연인에게 치중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내 연인에 대한 질투이기도 했다. 뭐랄까? 자신의 관심과 그에 따른 행동이 연인에게 향하는 만큼, 연인 또한 그 만큼의 관심과 행동이 자신에게 향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일종의 보상심리다. 하지만, 세상에 똑같은 비율로 똑같이 사랑을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사랑의 표현방식은 성별로도 다르지만, 나이 대에 따라서도 다르고, 가장 중요한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 등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치로 따질 수 없는 사랑의 관심과 행동 등이 보상받지 못할 때,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과는 다른 이성을 바라볼 때와, 그들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 일종의 질투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질투로 인한 자기 파괴의 고통 속에서 많은 사랑의 낙오자들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질투가 없다면 그것 또한 사랑일까? 나의 연인이 다른 이성과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고, 흔히들 말해 다른 이성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장소인 나이트클럽이나 클럽 등 사교 댄스장을 가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것은 완전한 사랑일까? 사랑은 소통을 전제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질투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 이 두 개의 감정이 적절히 조화가 될수록 사랑은 뜨거워지고, 서로를 갈구하게 된다. 질투 또한 그 사람을 향한 열망의 왜곡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질투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연인 중 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에 차 있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을 주는 만큼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일종의 굴욕감을 갖기 때문이다. 이것이 참 어렵고 힘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며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 또한 내 경험 면에 의존하여 말할 수밖에 없다는 모순성이 함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몸으로 느낀 것만큼 살아있는 감정이 또 어디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보탬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자기 파괴적 성질을 깨달은 후부터 사랑을 지극히 방어한다. 하지만 어느새 가슴 한 구석에 외로움은 쌓이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하고픈 욕구가 꿈틀거린다. 사람이라는 게 이상하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이 더 이상하다. 사랑을 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을 느끼고 난 후에도, 타오르는 갈증처럼 계속 사랑을 갈구하게 되니 말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사랑 그 자체를 질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사랑의 그 본성 자체를,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도 영원히 살아남아 있을 사랑 그 자체를 말이다. 그리하여 그 사랑이 내 사랑에게 다가 올 그 순간에 우리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질투에 눈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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