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인각적인, 여자의 질투

질투. 미워하고 샘내는 마음. 인간이 느끼는 오만가지 감정 중에 가장 매력적인 감정.

질투는 상대를 두고 벌어지는 의미심장한 스토리를 지닌다는 점에서, 지극한 자기애를 근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다.

 

얼마 전 다섯 살 난 딸애가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다른 애 그네를 밀어주는 걸 보는 순간 온 몸이 매운 느낌이 나면서 그 둘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그리고 자기 자신이 가여워서 위로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단다. 질투다. 딸애는 지금도 그 어느 때보다 맵고 가여운 질투의 화염에 불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할머니도 끙끙 앓아누우셨던 적이 있었다. 몸이 불편하신건지, 자식들에게 서운한 것이 있으셨던 건지 우리 모두 머리를 모아 봐도 뾰족한 수가 없었는데, 어느 점잖고 기품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병문안으로 모든 의혹이 풀렸다. 노인대학 공식지정 커플이셨던 할아버지께서 어느 새로운 할머니를 자전거에 몇 차례 태워드렸단다. 이를 본 우리 할머니께서 얌전한 체면에 드러내놓고는 질투를 할 수 없어 혼자 가슴앓이를 하다가 그만 몸져누우셨던 것이다. 5살 아이든 여든 넘은 노인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하거나 호의적인 태도로 대할 때 느끼는 미움과 분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속에서 치미는 못마땅함을 넘어서 온 몸의 세포가 한 번에 비명을 지르며 자연발화 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러기에 남녀노소,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인간의 본능으로서 질투는 인간이 지닌 감정 중 가장 짠하고도 솔직한 얼굴을 가졌다. 드러내거나 들켜선 안 된다는 것 또한 질투라는 감정의 얄궂은 옵션이다

 

 

 

 이성으로 인한 질투는 그나마 로맨틱하기라도 하지.

잘나거나 앞선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질투는 좀 더 괴로운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그런 질투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는데 시작은 임산부 요가교실에서부터였다. 주먹 크기도 안 되는 태아의 심장 소리며 성별, 미세한 움직임 등도 우리에겐 부러워하거나 우쭐할 조건이 되었고, 튼살 마사지 크림이나 각종 신생아용품, 제대혈 은행 보증금 규모 등으로도 서로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곤 했었다.

조리원에서도 산후마사지 프로그램 등급에 따라 서로를 보는 눈길이 달랐으며, 보모를 쓰는 문제에 있어서도 조선족이냐 순수 한국인이냐 혹은 영어권 나라의 학습 튜터까지 가능한 보모냐를 두고 여자들의 눈치전쟁은 심각했다.

여자의 질투는 그 대상도 참으로 폭이 넓다.

옆집에서 쓰는 치약에 대한 호기심에서부터 헐리우드의 엄청난 상속녀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여자의 질투에 동네 마트 전단부터 백화점 쇼윈도 마네킹 스타일이 결정된다.

요즘은 워킹맘을 의도적으로 따돌리려는 전업맘들의 질투가 최고인 것 같다고 느낀다. 유치원 담임선생님의 신상과 기호에 관한 정보부터 좋은 과외 선생 연락처까지. 워킹맘들은 감히 엄두도 못낼 전업맘들만의 승전물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게 당연하다는 그들의 논리는 사실 잘 가꿔진 워킹맘들의 외모와 커리어, 연봉 및 외식 패턴에 대한 질투에 불과한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나는 전업맘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질투는 온종일 목 늘어난 티셔츠 바람으로 아이와 함께 종종걸음치는 그녀들의 수고에 기반한 것이며, 그것은 분명 자각치 못하는 자기애에서 출발한다. 다만 그녀들은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피할 논리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질투는 사랑이나 희생 등과 같은 아름다운 가치를 지니는 감정처럼 예쁘게 생기지 않았다. 그 모양새가 울뚝불뚝하고 성기며 거칠기 그지없기에 모두가 질투하는 모습에 야박하게 군다. 그러나 질투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더 우리 모두는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질투에 야박한건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질투라는 것은 들키거나 드러났을 때, 인격적인 문제로까지 연결되는 터라 우리는 그것을 치열하게 감추거나 지나치게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살리에르를 보라. 그는 당대에 나름 훌륭한 음악가였음에도 그의 연관검색어에는 살리에르 증후군이 더 호응을 얻는다. 주변의 뛰어난 인물 때문에 느끼는 열등감, 시기, 질투심 등의 증상이 그렇다는데 그것이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어디 살리에르만의 문제였겠는가.

질투는 누구의 잘못으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바람에 재채기가 나고 너무 찬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우리에게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감정이다.

열등감을 동반하는 질투, 수치심이라는 머리로 시작해 죄책감이라는 꼬리로 마무리 짓는 질투, 인격적 수양이 덜 되어 생기는 감정이라는 도덕적 압박에 시달리는 질투.

질투한다고 장희빈처럼 사약이 든 약사발이 들이밀어지진 않을 것이다.

오늘은 우리 맘껏 질투하자.



 

Trackback 0 Comment 1
prev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