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읽는 밤

유진 오닐이라는 이름의 작가가 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퓰리처상을 4회 수상했으며 미국 최고의 극작가라고 평가 받는 인물이다. 그는 1953년 사망했다. 그는 호텔에서 태어났고, 호텔에서 죽었다. 그의 삶은 늘 길 위에 있었다. 작가로서의 성공과 명성에 둘러 싸여 있을 때조차 그의 마음은 컴컴한 어두운 길목에 서성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희곡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몇 번의 결혼실패와 가정불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내면은 슬픔과 분노로 점철되어 있었다. 하지만 걷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족쇄처럼 자신의 발목을 꼭 죄어 삶을 무겁게 내리 누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었다. 유진 오닐은 자신의 가족사를 희곡으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서, 어머니가 되어서, 제임스가 되어서, 에드먼드가 되어서... 그토록 이해하지도 못하고 화해할 수도 없었을 것 같았던 그 순간을 희곡 속에서 다시 살아낸다.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희곡의 내용은 이렇다. 아일랜드 이민자이자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파멸해 가는 아버지와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 알콜과 여자에 빠져 하루하루를 낭비하는 형, 그리고 그 모두를 바라보고 있는 ‘안개인간.’ 극 중에서는 에드먼드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결국에는 유진 오닐 본인이다. 그들은 여름 별장에 모여 아침부터 자정까지 서로를 버텨낸다. 상처내고 할퀴어대지만 사과하지 않고 그러니 화해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용서하지도 않는다. 상처는 잔뜩 벌어진 채로 곪아 터져 썩고 있는데도 아무도 봉합해 주지 않는다. 유진 오닐에게 가족은 바로 그런 상처다. 


누군가에게 ‘가족’ 이라는 단어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찬 무엇일 것이다. 하지만 유진 오닐에게 가족은 ‘해묵은 오랜 상처’다. 그가 제일 바라던 순간은 어쩌면 여름 별장에 모여 가족들이 공유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하나 씩 꺼내며 시원한 하이볼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여러 번 들어서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꺼낼 때 마다 웃음이 터지는 우리라서 가능한 이야기들... 유진 오닐이 꿈꾸는 가족의 풍경은 그런 것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유진 오닐은 그렇게 살지 못했다. 자신이 가족을 이루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가족은 그에게 버거운 무엇이었다. 두 번의 이혼을 경험했으며, 장남 유진 오닐 2세가 자살을 했다. 그리고 딸 우나 오닐이 자신보다 36세 연상인 채플린과 결혼하자 의절한다. 오랜 동반자였던 세 번째 아내 칼로타와도 극심한 불화를 겪었다. 그는 1953년 11월 27일 호텔방에서 죽는다.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죽음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 방의 침대에서 편안하게 잠드는 그런 죽음은 유진 오닐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평생 가족은 그에게 행복을 앗아가는 저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극작가가 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에게 그 모든 것은 빌어먹을... 이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와의 짧은 통화  (0) 2015.05.31
고백의 가족  (0) 2015.05.31
가족을 읽는 밤  (0) 2015.05.31
가족을 부르짖는 당신에게  (0) 2015.05.31
가족은 어떻게 성장 하는가  (0) 2015.05.31
진화심리학으로 본 오셀로의 질투  (0) 2014.08.18
Trackback 0 Comment 0
prev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