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짧은 통화

용마산에 기거 중인 산신령, 관악산에 기거 중인 아버지 산신령에게 전화를 건다. 언제나처럼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여보세요?” 라는 말이 귓가를 때리자마자 “엄마 어딨어요?”하고 묻는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아버지 산신령은 말한다. “찜질방 갔는데.” 용마산 산신령은 대답인 듯 아닌 듯 중얼 거린다. “아아...” 그 뒤 통화의 내용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것 같은 말들이 천천히 오고 갔는데 주로 식사하셨어요와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20초간의 통화를 끊고 나서 용마산 산신령은 여느 때와 다르게 뭔가 찝찝함을 느꼈는데, 그 이유인즉슨 너무나 오랜만에 들은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새삼 슬픔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십 몇 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와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대화의 거의 대부분이 ‘엄마’에 대한 주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 어딨어요?” “엄마 어디 아파요?” “엄마랑 싸우셨어요?” 기타 등등. 갑작스런 깨달음은 깊은 사색으로 이어졌다. 아버지는 과연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라는 물음에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어떤 얼굴로 존재하는 것일까? 에 대한 의문까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복잡해진 마음으로 영화 한 편을 다운 받아 보게 되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허삼관> 이란 영화였다. 

  




  한 때 속세에서 글을 쓰고자 애를 쓰던 시절, 용마산 산신령은 위화라는 중국작가에게 빠지게 되었는데, 그때 읽었던 소설 중에서 <허삼관 매혈기>가 있었다. 무협 소설을 표방한 것 같았던 소설은 허삼관이라는 남자가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무협 소설 보다 더 유혈 낭자한 이야기다. 영화 <허삼관>은 중국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어쨌든 <허삼관>은 용마산 산신령에게 묘한 울림을 주었는데, 피로 맺어진 가족과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피를 팔아야 하는 허삼관의 삶이 묘하게 매치가 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피땀을 흘린다는 게 저런 거였어.”하지만 이런 허삼관의 삶에 청천 벽력같은 일이 벌어진다. 제일 아끼는 큰 아들 일락이가 자신과 다른 피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허삼관은 억장이 무너진다. 나랑 피가 다르다니! 럴수, 럴수, 이럴 수가... 허삼관은 당연한 듯이 일락이를 따돌린다. 눈을 마주쳐도 웃어주지 않고, 외식할 때도 떼어 놓는다. 속으로는 억장이 무너지면서도 겉으로는 나랑 피가 다른 사람을 위해 내 피 같은 돈을 쓸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사건은 다시 반전되는데, 일락이가 쓰러져 버린 것이다. 일본 뇌염으로 말이다. 그제야 허삼관은 정신이 번쩍 든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그래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락이는 허삼관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오랜 기간 자신을 속여 온 운명에게 배짱한 번 튕겨 보고자 했으나 어쩔 수 없이 허삼관은 일락이의 아버지였다. 그래서 허삼관은 피를 팔기 시작한다. 치료를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필요한데, 가진 것 없는 허삼관에게 그 말은 엄청나게 많은 피를 뽑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자신과 피를 나누지 않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피를 내어 줌으로써 허삼관은 다시 일락이를 품게 된다. 첫 자식을 가진 기쁨을 안겨줘서 ‘일락(一樂)’이라 이름 붙였던 남의 새끼가, 원래 내 새끼가 된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용마산 산신령은 뜻밖에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뭔가 서러웠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도 아닌 아이를 위해 일락이 아버지는 저렇게 까지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뭐하는 산신령이람? 한창 클 땐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아버지, 가족의 개인사에는 관심을 끊고 살던 아버지, 소파랑 침대와 가장 친했던 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관악산의 산신령이 된 아버지... 하지만 지난 30년간 장기근속하셨던 아버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용마산 산신령도 알고 있다. 아버지도 그 동안 꾸준히 ‘매혈’을 하고 있었다는 걸. 회사에서 흘린 피땀이 한강물을 채우고도 남았다는 걸. 언젠가 용마산 산신령의 엄마가 저주를 내리듯 이렇게 외친 적이 있었다. “딱, 너 같은 자식 한 번 키워봐라!” 흥칫뿡! 하면서 넘겼으나 용마산 산신령의 등허리는 오싹해졌다. 나 같은 자식이라니... 저주도 그런 저주가 없다. 나 같은 자식을 갖는 것이 축복의 말처럼 느껴지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뭔가를 좀 바꿔봐야 할까? 시작이 반이라고 용마산 산신령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낮고 갈라진 관악산 산신령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아버지, 저예요.” “안다. 엄마 없다.” “아...” “끊는다.” “아니요, 저... ” “왜?” “식사하셨어요?” “......” “......”“먹었다. 너는 먹었니?” “이제 먹을라구요.” “끼니 잘 챙기거라.” “네...” 몇 초간의 침묵이 용마산 산신령과 관악산 산신령에게 흘렀다. 그것은 흡사, 사귄지 얼마 안 된 연인들의 호흡과 유사했다. 아쉽고, 간절한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안타까운 순간. 바로 그때, 관악산 산신령이 낮게 중얼거렸다.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용마산 산신령은 저도 모르게 울컥했는데 그 이유는 관악산 산신령의 흰머리가 떠올라서 이기도 하고, 서로 간에 잃어버린 시간들이 아쉬워서 이기도 하고, 자신이 철이 들 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대한 충격에서 일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거기 그 곳에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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